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 (문단 편집) == 여담 == 그 역시 구 유고슬라비아에서 분리된 다른 국가들의 대통령들과 같이 권위주의적이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래도 그의 [[정적]]들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프라뇨 투지만]], [[라도반 카라지치]] 등과 비교하면 학살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확실하다. 생전의 모습들이 굉장히 [[노안]]이지만, 놀랍게도 숙적 중 하나인 프라뇨 투지만보다 연하이다. --투지만이 동안이라고 생각하자.-- [[요시프 브로즈 티토]] 치하 당시에 숱하게 고생한 것 때문에 노화가 빨리 찾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2006년 8월 11일, 그가 안장된 무덤에 [[폭탄 테러]]가 발생하였다. 현 시점까지 용의자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http://news.bbc.co.uk/2/hi/europe/4783333.stm|#]] 이슬람 관련 저술 활동을 활발히 하고, 근본주의 국가 끝판왕인 [[이란]]과의 커넥션을 펼친 등 여러 가지 일로 인해 어떻게 보면 [[이슬람 근본주의]]자 같지만, 그의 통치기간 내내 보스니아의 이슬람화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며, 그의 생전 사진들도 깔끔하게 수염을 밀고 양복을 차려입은 것들로 가득한 것을 보면 적어도 진지하게 보스니아의 신정국가화는 생각하지 않았고, 보스니아인들의 민족주의적 단결을 촉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슬람을 사용한 것은 분명하다. 또한 전쟁의 참화가 일기 전에는 보스니아 내 민족들의 화합을 주장하며, 독립을 거부하는 세르비아계에 대해서도 대화를 시도하는 등 인간도살자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1990년대 한국의 언론에서는 그를 일생을 반공으로 일관하고 실용주의적인 회교 민족주의자라고 띄워줬다. 반이슬람 정서가 퍼지기 전의 시대고, 인종청소의 피해를 입고 있는 비극의 민족을 이끄는 지도자라 이러한 미화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서적들과 [[https://muzejalijaizetbegovic.ba/biografija/|전기]]는 애초에 보스니아가 한국에서 유명한 나라가 아니다 보니 애석하게도 번역된 서적이 존재하지 않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